2007년 4월 5일. 광주 출장 중이던 난 막간을 이용하여 광주 인근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瀟灑園을 찾아 가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2004년 2월 가족과 함께 찾았던 소쇄원엔 눈이 소복이 내려있어 느낌이 색다르기는 했지만 광풍각光風閣 보수공사로 인해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2006년 개봉한 한국영화 ‘가을로‘에서 소쇄원의 모습을 보고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출장 중에 짧은 시간이 주어져 소쇄원을 찾았다.
한산한 평일 오후에 소쇄원을 즐길 생각에 난 두 대의 카메라를 안고 황급히 입장하였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대나무숲과 대봉대待鳳臺, 애양단愛陽壇이 날 반겼고 이내 제월당霽月堂과 함께 보수공사를 마친 광풍각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한산한 소쇄원엔 몇몇 어르신들만이 여유를 즐기고 있을 뿐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난 카메라를 번갈아가며 느낌을 담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주차장에서 보았던 무시무시한 관광버스가 쏟아낸 수많은 학생들이 소쇄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맙소사! 평일 오후엔 한산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아주머니와 나란히 앉아 광풍각에서의 풍경을 즐기던 난 버릇없는 무수한 아이들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고, 어수선함에 기분을 망쳐 이내 소쇄원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결국 다음 날 따로 시간을 내어 소쇄원을 다시 찾았다.
‘소쇄瀟灑’는 ‘마음과 기운이 맑고 깨끗함’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소쇄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에 파묻혀 맑고 깨끗하게 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양산보는 조선 사회를 개혁하려던 그의 스승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왕이 내린 사약을 받고 죽게 되자, 모든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 담양으로 내려와 세상을 멀리하고 자연과 벗하기 위해 소쇄원을 만들었다.
소쇄원은 흐르는 계곡을 자연 그대로 살린 채 각 건물을 지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잘 이룬다는 점에서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이나 아담하게 잘 꾸며놓은 일본의 인공적인 정원과는 격을 달리 한다. 사실 ‘정원’은 일본에서나 사용하는 말로 소쇄원 등을 정원으로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원림園林’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자연 상태의 동산과 숲, 계곡을 적절하게 가꾸어 꾸민 것을 말한다. 그러다보니 이 곳을 처음 찾는 이들은 적당한 규모와 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모습에 다소 실망하거나 흥미를 잃을 지 모르겠다. 외부에서 어떻게 보여지는 지를 중요시하는 문화에 길들여져, 정작 내부에서 무엇이 어떻게 보여지는 지의 중요함은 모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원림인 소쇄원을 볼 때,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으시대려는 헛된 노력보다는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손대지 않은 자연 자체를 벗삼아 이와 함께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 2007 by 방형준(才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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